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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페드로 알모도바르기본정보

인물
페드로 알모도바르

Pedro Almodovar

출생
1951.09.24
국적
스페인
사이트
www.clubcultura.com/clubcine/clubcineastas/almodovar
바이오그래피

1951년 9월 25일 스페인의 칼조다 데 칼라트라바에서 태어났다.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스페인에서 루이스 부뉴엘의 전통을 잇는 작가일 것이다. 그는 부뉴엘 이후 잊혀졌던 스페인 영화를 80년대 세계영화 속으로 복원시켰다. 그의 영화들은 독특한 색채감각과 성적인 유머, 그리고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알모도바르 스타일’을 완성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정신 나간 캠프 감독’으로 불리우며 한편으로는 ‘행복하게 웃는 얼굴의 고다르’로 불리우는 시네아스트이다. 라 만차 지방에서 태어나 종교적 교육을 받는 대신 극장을 전전했던 알모도바르는 16세가 되자 영화를 만들고 싶어 홀홀단신 마드리드로 상경한다. 그러나 프랑코 정권에 의해 영화학교는 이미 문을 닫았고 알모도바르는 그 후 12년간 마드리드 전화회사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70년대를 보낸다. 이 때 그는 8미리 카메라를 사서 직접 단편영화들을 만들며 아방가르드 연극 그룹에서 공연도 하였는데 특히 펑크 록 밴드에서 드랙퀸 분장을 즐겨 하고 나타나 마드리드의 팝 서브컬처에 주요 멤버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첫번째 장편영화 (80)과 (81)는 그의 언더그라운드 취향이 확대된 작품들로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비행 수녀들의 질서를 그린 (84)은 심각한 국제적 반향과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알모도바르의 스타일은 신랄한 패로디로 치달아 멜러드라마 (85), 일식을 앞두고 광란에 빠지는 성적 강박관념을 통해 캠프 미스테리를 그려낸 (86), 그리고 자기 스타일의 컨벤션들을 과시하는 키취적 취향의 영화 현상에 관한 영화 (87)을 만들면서 알모도바르 스타일을 이끌어냈다. 에서 비롯된 80년대 알모도바르의 성공은 성과 죽음과 색채에 대한 그의 일관된 관심을 국제적 흥행요소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컬트 취향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제작/배급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감독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싸구려 원색과 기괴한 마스크들로 온통 화면을 도배한 강박관념의 걸작 (88)로 비평적/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 후보지명되었으며, 그 해 깐느 영화제에서 주목을 모았다.게이인 그 자신의 성적 정체성으로 알모도바르가 이끌어내는 유머와 억압에 대한 해체는 스페인 영화의 새로운 전통이 되었고, 이것은 그의 선배인 카를로스 사우라와는 정반대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서스펜스 속에 벌어지는 기이한 욕망의 새디즘 (90), 함정과도 같은 모녀의 삼각관계 (91) 이후 그리고 알모도바르의 도발적인 탐색이 절정을 이루는 열번째 영화 (93)는 사진작가와 전기작가의 엿보기 속에서 소란스럽고 외설스러운 세 여자가 뒤엉키는 치정과 음모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이 작품을 통해 알모도바르는 자신의 모든 영화를 키취와 패로디의 대상으로 삼는다. TV의 리얼리티 쇼를 공격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시도한 그로테스크한 갤러리 는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스페인 내에서 엄청난 비난과 혹평을 받았다. 알모도바르에게 가 쾌락의 80년대와 진지해진 90년대에 걸쳐 있는 과도적 중간결산의 의미를 지닌다면, 아마도 (95)은 성숙한 알모도바르의 자기고백을 만나는 첫번째 영화일 것이다. 가명으로 자서전과도 같은 소설을 쓰는 여류작가의 위기를 다루며 알모도바르는 자기 모습을 반영해낸다. 그리고 98년 루스 렌델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를 완성한 후 알모도바르는 99년작 과 2002년작 를 통해 성숙해진 알모도바르 미학을 완성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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