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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테오 앙겔로풀로스기본정보

테오 앙겔로풀로스

Theo Angelopoulos

출생
1935.04.17
바이오그래피

정식 이름은 테오도르 앙겔로풀로스. 1935년 4월 27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아테네에서 법률 공부를 시작했으나 문학에 매료되어 법학을 그만두고 1960년에 파리 소르본느 대학에 들어가 문학부에서 공부하였다. 졸업 후 그리스로 돌아가지 않고 파리 영화학교(IDHEC)에 입학했지만 1년 후에 강사들과의 불화로 중퇴한 후 67년에 그리스로 돌아온다. 1970년에 만든 그의 데뷰작 <범죄의 재구성>은 다섯명의 스탭과 6천 파운드의 제작비로 에피루수 지방의 한 마을에서 촬영한 작품으로, 그리스 최초의 독립영화로 불리운다.


이 작품을 통해 앙겔로풀로스는 자기 영화에 형식적 날인과도 같은, 정지 카메라와 끊임 없는 이동 쇼트의 교차를 통해서 롱 테이크 형식을 만들어냈다. 앙겔로풀로스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는 그가 그리스 독재 정치 하에서 투쟁적으로 찍어낸 ‘그리스 3부작’ <36년의 나날들>(72), <유랑극단>(75), <사냥꾼들>(77)을 통해 불러일으켜졌다.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것”이라고 스스로 설명한 바 있는 <1936년의 나날들>에서 앙겔로풀로스는 화면 밖의 행위, 사멸된 공간과 시간, 느리고 연속적인 트래킹 쇼트 등을 이용한 비드라마적이고 브레히트적인 스타일상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이는 검열 위협에 의해 비롯된 형식으로서 강요된 침묵의 상황 속에서 침묵의 언어를 영화적으로 구체화해낸 결과이다. 대령통치 시대에 금기시된 역사적 시기(1939년 메타삭스의 실각과 1952년 파파고스의 선출에 이르는 그리스 역사적 격돌시기)를 혁명적 관점에서 유랑극단의 배우들이 체험하는 것으로 다룬 <유랑극단>은 1974년 대령들의 실각으로 5개월 여 동안 촬영이 중단되었고, 깐느영화제에는 비밀리에 출품되어 국제비평가상을 받았다.


터키 지배하에 있던 1453년부터 시작되어 수세기에 걸쳐 구전되어 온 전설 속에 존재하는 해방자이자 구세주인 알렉산더 이야기와 1870년에 있었던 실제 사건을 인용한 <알렉산더 대왕>은 1900년 신년 전야제에 홀연히 나타난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에 온 각국 외교관들을 납치하여 세계를 상대로 새로운 국가 건설을 목표로 민중해방을 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파시스트 독재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우화처럼 그려냈다. 이 영화는 앙겔로풀로스에게 처음으로 국제영화제 트로피를 안겨주었다. 그리스에 민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앙겔로풀로스는 계속 비판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다. 철의 장막 뒤에 남겨진 그리스 망명객들 중의 한 노인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3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마을 사람들도, 그리스 정부도 그를 환영치 않고, 소련 정부로부터도 거절당함으로써 공해상의 뗏목 위에서 부인과 합류하여 시텔 섬으로의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의 <시텔섬으로의 여행>, 여행 중에 히치하이커를 만나는 우울한 퇴직 교사의 이야기 <양봉치는 사람들>, 어머니의 거짓말 속에 존재하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 어린 두 자매가 사회의 추악함과 도덕적 타락 등을 경험하는 공허하고 절망스러운 감성의 <안개 속의 풍경>에 이르면서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는 탈정치화되는 대신 좀 더 실험적인 형식과 형이상학적인 알레고리에로 이끌리기 되었다.


무한정한 롱 테이크의 연속과 정지적 태도의 모호함으로 일관하는 <황새의 멈추어선 걸음>에서 찬반양론을 이룬 앙겔로풀로스는 영화의 100년을 맞이하는 해에 <율리시즈의 시선>을 만들었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 속에는 세상에 대한 환멸의 시선이 나타나 있지만 또한 풍요로운 시정과 진실한 마술의 힘으로 꾸는 꿈이 보여진다. 세기초의 시각은 세기말의 시각과 만나야 한다고 믿는 그는 ‘세계를 찍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에 대한 믿음을 영화화’하며 세기말을 지키는 시네아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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