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케 다카시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기묘하게도 21세기에 들어서이다. 2000년 당시 첫 회를 맞았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그의 작품인 <오디션>이 공개되었고, 그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표류가>가 상영되었던 것이다. 엽기적인 상황연출에 강렬한 폭력묘사와 황당한 유머를 넘나드는 그의 스타일은 곧 한국 팬들에게 독특한 개성을 가진 또 다른 작가주의 감독의 출현을 알리는 것이었다.
1960년 오사카 출신인 미이케 다카시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영화에서 주로 다루게 되는 인물들,
즉 야쿠자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접하며 성장해왔다. 미이케 다카시는 성장기의 이런 경험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 즉답은 피하지만, 그의 영화에 드러난 관심사와 소재들을 보면 이런 상황과 분리시켜 생각하기는 어렵다.
요코하마 방송영화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이마무라 쇼헤이와 온치 히데오 같은 감독들 밑에서 사사 받았으며, 91년부터 비디오 영화(이른바 V 시네마)를 만들기 시작한다. 미이케 다카시의 작업 스타일은 대단히 빠른 것(보통 1년에 5편 혹은 그 이상)으로 유명한데, 그의 작업 스타일은 이러한 과정에서 몸에 밴 것으로 파악된다.
95년 드디어 미이케 다카시는 <신주쿠 흑사회(혹은 신주쿠 중국 마피아 전쟁)>으로 극영화 데뷔를 하게 된다. 이 작품은 일본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을 주인공으로 중국 갱과 일본 갱, 경찰과 온갖 하위 뒷골목 문화의 인간군상이 얽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미이케 다카시는 여기에다 동성애와 섹스, 총격전, 잡종 교배된 관습과 문화적 양식들을 뒤섞으며 처음부터 확실하게 자신의 스타일을 팬들에게 선포한다. 이 작품과 뒤이어 발표된 97년 <극도 흑사회>, 99년 <일본 흑사회>는 '흑사회 3부작'이라 불리며 미이케 다카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미이케 다카시의 작품 스타일을 단순히 야쿠자 폭력영화로만 분류하는 것은 대단히 협소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 안에 판타스틱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능숙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즐기는 감독이기도 하다. 이것은 그의 영화에서 주로 펼쳐지는 폭력적인 양식과 맞물려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를테면 그의 또 다른 야심작이라 할 수 있는 <데드 오어 얼라이브> 3부작 중 첫 편에서, 마지막 순간에 대립해왔던 두 주인공이 갑자기 바주카포로 서로에게 포탄을 쏘는 장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판타스틱한 분위기는 국내에 소개된 미이케 다카시의 모든 작품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표류가>의 닭싸움 장면이나 여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남자 주인공이 헬기에서 지상으로 낙하하는 장면, <비지터 Q>에서 젖을 물총처럼 쏘아대는 어머니, <오디션>의 여주인공 야마사키의 모습 속에 언뜻언뜻 보이는 순정만화적인 감성과 분위기. 극단적인 폭력과 참혹한 상황 속에서 돌연 등장하는 판타스틱한 요소는 관객들에게 황당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이것은 미이케 다카시 영화의 또 다른 재미라고도 할 수 있다.
미이케 다카시는 이러한 자신의 스타일 속에 일관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무국적성과 일본에 대한 비관적인 비전이다. 지구 폭발로 치닫는 <데드 오어 얼라이브>의 마지막 장면이나 <표류가>에 등장하는 남미계 일본인이라는 주인공, 중국인과 일본인 갱들의 모습은 쉴새없이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 속에서 변주되는 모습들이다. <비지터 Q>에서는 붕괴된 일본가족의 적나라한 모습을 담고 있으며, <오디션>은 아예 노골적으로 영화 서두에 일본의 붕괴를 이야기한다. 그의 영화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신주쿠는 이런 문제의식을 반영한 상징적인 공간이다.
시스템을 거부하지도 않지만, 시스템에 얽매여 있지도 않은 감독. 일년에 7∼8편의 영화를 만들지만 일정 수준을 유지하며, 그 안에 자신의 스타일과 문제의식을 펼쳐 보이는 감독. 미이케 다카시는 분명 새로운 세기에 어울리는 영화작가라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