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전란 등으로 피폐했던 20세기 초반, 근대 중국의 광동 '불산(佛山)' 은 중국 남파 무술의 주요 발원지로써 무(武)를 숭상하는 풍조가 있었고, 많은 무술들이 교류하는 집합장이 되어 , 무술의 고향이라 알려지게 되었다. 때는 1935년 , 중국 광동성 불산에는 '엽문(견자단 분)' 이라는 영춘권의 고수가 살고 있었다. 그는 항상 집안에서든 밖에서든 무술 밖에 모르는 사나이였다. 불산 내에서 그의 무술 실력과 명성을 모르지 않는 이는 없고 , 이 소문은 불산을 넘어서까지 널리 퍼져 그의 집은 중국 각지에서 그와 대련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로 들끓었다. 그러던 1937년 7월 7일. 노구교 사변이 일어나고 일본군의 공습이 시작되어 마침내 중일전쟁으로 발발하게 되는데 이에 불산 역시 큰 피해를 입어 각지가 황폐해지고 굶어죽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청년 고수 '엽문' 은 생계를 위해 무술 수련을 중단하고 , 막노동판을 전전한다. 그러던 어느날 , 엽문은 중국 무술가들이 일본군에 의해 처참히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자신이 중국 인민의 단결을 위해, 그리고 항일투쟁을 위해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깨닫는다.